살면서 생각나는 글

보리밥을 먹다가.....

서리풀 김박사 2024. 1. 12. 18:00

 지난주 감기는 조금 잠잠해지나 싶더니 좀처럼 나아지지 않네요. 몇 일 계속된 감기와  장기간의 약 복용때문이지 약간은 머리가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감기라 사람들과의 직접 접촉은 피하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는 한낮에도 쌀쌀한 바람과 영하의 날씨는 현재 몸상태를 고려하여 상식적이라면 병원 원장실에서 혼자서 대충 먹겠지만 하루종일 실내에만 있는 상황이 답답하고 체질적으로 돌아다닌 걸 워낙 좋아해서 진료때 쓰던 의료용 마스크와 목이 두꺼운 폴라티에 가디건 그리고 질감이 손으로도 두툼하게 느껴지는 모직바지로 나름 무장을 하고 거리를 나섭니다.
 
제가 이 근처로 온 이후 거의 메뉴는 김치찌게 위주로 먹었지만 몸이 아픈 약 8일 동안은 몸이 필요해서인지 본능적으로 저를 저희 병원쪽에서 수유사거리 방향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식 뷔폐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 곳은 예전 지나다가 한두번 들린적이 있는 가계로 대부분의 요즘 식당들이 더 자극적인 맛을 위하여 많은 조미료과 감미료를 사용하지만 이곳은 약 6개의 기본 찬과 보리밥 그리고  큰통의 나물국 그리고 제육 및 약간의 순두부 정도가 다입니다. 가격은 7000으로 저렴해서인지 어르신들이 많이들 오시지만 가계 규모에 비하여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곳에 요즘 계속 온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가지와 해산물 몇가지 그리고 주되게 보리밥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저도 보리밥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몸이 아픈뒤 자극적인 맛이 꺼려지게 되었습니다. 좋아 하는 반찬에 이끌려 먹게된  보리밥 처음에는 그다지 제 기호가 아니라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몇일 먹다보니 나름의 풍미가 있습니다. 첫 입에 그리 매력적인 맛은 아니지만 약간은 거친 느낌의 밥알을 천천히 씹다보면 어느새 특유의  향이 느껴집니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순한맛 은은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을 채움니다. 반찬은 가지에 나물 맑은 국물이면 충분합니다. 굳이 일인분의 양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제가 먹고 싶은 만큼 먹기에 최소한의 양만 덜어옵니다.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 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리밥과 제가 좋아하는 가지 무침과 담백한 콩나물 국물 화려하지는 않지만 먹다보면 굉장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대부분 점심이라면 그저 하루에 중간에 배를 채우는 정도의 의미였다면 풍미있는 보리밥과 원장실에 두고온 핸드폰 덕분에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으로 만끽하는 한끼 식사의 만족감. 순간 뭔지 모를 기쁜 느낌이 몰려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이었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요 몇일 식사를 하면서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것이 행복감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생각했던 행복은 예전엔 두가지의 경우로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성적이 나왔거나 아니면 주식이 많이 올랐거나 부동산 가격등 대부분  쾌락을 행복으로 생각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서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지만 저의 힘으로 혹은 누군가의 고마운 도움을 받아서 힘든 일을 극복해 냈을때 느끼는 쾌감 전공의 시절 힘든 수술을 끝내고 밤늦게 수술기록부를 쓰고 난뒤  깜깜한 밤 혼자서 책상에 앉아서 느꼈던 잠깐의 휴식속에 행복감 같은 즉  험한 산을 정복한 뒤 느끼는 만족감을 대표적인 행복으로 인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점심처럼 보리밥 한끼에도 많은 만족을 느낍니다. 이는 감기로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특별히 걱정거리가 없고 모든것이 평온한 일상 이 자체로 느끼는 행복감이 보리밥으로 투영된거 같습니다. 뭔가 특별하지 않아도 잔잔함 속에 아름다움 실제론 걱정거리가 있어도 그 걸 대하는 마음의 상태 지난주 기숙사로 입소한 딸이 갑자기 독감이 걸려서 다시 집에 왔지만 그 이면엔 다시 만나서 아빠 엄마를 너무 반겨주는 딸아이의 미소속에 행복감 비록 어제 자기전 아내와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출근길에 몸 아픈데 고생많다고 격려의 한마디 다 특별히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뒤집어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온한 일상들 이런것도 행복의 큰 비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비록 큰돈의 일확천금도 좋은 차를 샀을때의 자극적인 기쁨은 아니지만 소소한 끼쁨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걸 체감합니다. 로또같은 일확 천금의 기쁨을 행복으로 환산된다면 일생을 통틀어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오늘 점심처럼 보리밥을 먹으면서 아니면 딸아이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건강한 전화 안부같은 소소한 일상들이 행복이라면 우리의 의지대로 삶을 행복으로 많이 덧칠 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행복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행복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에 어릴적 보았던 드라마의 제목인 파랑새는 있다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행복은  그렇고 항상 멀리 있다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쾌락주의와 공리주의에 기초한 학파에서는 궁극적으로  쾌락 = 행복 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동양적 사상으로 보면 행복은 결국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돌고 도는 관계이며 행복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상황에 닥쳤을때 개인의 상황에 대한 대처를 아주 강조합니다. 그리고 니체나 쇼팬하우어는 역경을 대처하는 자세에서 행복을 논하며 칸트는 일상적인 윤리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감은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많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몇일째 컨디션이 조금 떨어져서 소소한 행복에 집중했다면 다시 체력이 회복되고 컨디션이 올라온다면 병원이나 일상의 물질적인 성공 즉 쾌락에 몰두하여 행복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든 행복을 선택할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현재가 암울하다면 극복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면 되고 모든게 평온하다면 그 자체로 행복을 즐기면 됩니다. 만약 감당 못할 너무 좋은 일이 일어나서 행복에 겹다면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삶의 태도를 가질수 있지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용한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다가 든 생각을  진료하느라 바쁜 와중에 틈틈히 진료 중간에 글을 쓰면서 저만의 행복을 실천합니다.  행복이란것은 오히려 나에게 오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늦은 오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