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나는 글

청소가 끝나고 난뒤 ( feat.깨진 유리창의 법칙 )

서리풀 김박사 2024. 3. 4. 18:20

 

부서진 유리창 하나가 모든것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조금은 긴장되고 분주했던 일들이 정리되고 토요일을 사이에 두고 금요일과 일요일의 나름 휴식기가 있었습니다. 평상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겐 이런 주중 공휴일이 가뭄의 단비처럼 기쁘게 느껴 질때가 있습니다. 간만에 휴식인데 푹쉬어야지 생각했는데 아내의 표정이 웬지 비장해 보입니다. 이제 부부로만 20년의 시간이 지나다보니 대충 어떤 결심을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설마 했지만 불길한 느낌은 잘 맞듯 아내가 미뤄왔던 일 중 하나를 해결하자고 제안합니다. 지난번 연주 이후로 입술에 수포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도 못했는데 내심 불안합니다. 그 일은 바로 제 딸아이의 오래된 2층 침대를 분해해서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딸아이의 방 한켠에는 초등학교 1학년때 샀던 2층침대가 있습니다.  딸아이의 키가 167 정도 되니 현재 초등학생용 침대의 기능은 없는 상태입니다.  침대 구조가 1층은 아늑하게 책을 보라고 벙커형의 좌식 책상을 뒀고 2층에서 잠만 자는 구조였습니다. 시간이 10년정도 지나다 보니 침대의 나사가 불안정 해졌는지 누군가 침대에 올라가면 삐걱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재건축을 앞두고 모두가 이주한 아파트처럼 약간은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가족 모두가 그 침대에 올라가는 걸 안전상의 이유로 엄격히 금지했고 그렇게 벙커형의 책상이 있는 그 곳은 잡동사니를 수납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변모되었습니다.  이제는 딸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애매한 물건들을 적재시키는 곳으로 가족에게 인식이 되었습니다.
 
사실 침대라면 그 어느곳보다 쾌적해야 하지만 기능을 잃어버린 침대는 물건을 쌓아두는 기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딸아이 책상 뒤편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던 그 곳은 사용하지 않은지 3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치울 엄두도 못내는 곳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아내가 지난해부터 저 곳을 끝장보자는 식으로 줄 곧 얘기했지만 저는 피곤하다 시간없다 등등 갖은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눈에 비친 아내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고 창고방에서 전동 드라이버와 망치 기타 실내 인테리어가 가능한 도구들을 한아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이젠 때가 왔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더이상은 미루다가 저 방이 침대에 의해 지저분게에 잠식될수 있다고 느꼈고 가끔 기숙사에서 오는 딸이 침대옆 할머니가 쓰시도록 놓아둔 침대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강한 의지의 아내손에 이끌려 침대분해며 쓰레기며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책상을 분해하거나 힘쓰는 일이 숙달되지 않아서 초반 분해할때는 시간이 꾀나 걸렸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2층을 분해하고 1층을 분해할때에는 급속히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결국은 책상의 분해도 힘들었지만 침대 구석구석에 있는 각종 오랜된 물건들과 버려야할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딸아이는 저를 닮았는지 자꾸 뭔가를 구석에다가 적재 할려는 습성이 있어서 침대를 정리하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꾀나 나왔습니다. 분해된 침대며 쓰레기가 방을 가득채우고 거실의 일부까지 나열되면서 약 3시간의 작업은 끝이 났습니다. 워낙 쿵쾅거려서 미안했지만 오늘 이런 일을 진행한 이유중의 하나도 아래층 부부가 외국의 따님께 놀러를 가서 집에 없은 것을 알기에 층간소음을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나온 쓰레기며 가구 조각들이 끝이없이 나옵니다. 봉지에 넣고 들고 대문밖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였습니다. 특별히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에 조각내어 혼자서 진행했고 계속 낑낑거리는 저를 보시고 경비아저씨께서  이 정도면 차라리 사람을 쓰시는게 돈버시는 거겠어요하고 걱정스럽게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장시간의 청소가 끝나고 비교적 깨끗해진 그 공간을 바라다 봅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5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우중충하고 답답한 느낌 이었다면 침대가 나간 자리를 아내가 걸레로 깨끗이 정리해서인지 화사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서 제가 샤워하는 욕조의 입구에 있는 서랍들 청소도 같이 시작했습니다. 방금전 깨끗해짐의 효과를 눈으로 지켜 보았기에 미뤄왔던 제 개인 서랍도 같이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크지않는 서랍장에서 참 많은 것들이 나옵니다. 철지나서 빨지 않는 옷부터 골프 용품들 그리고 구겨넣은 속옷까지 그렇게 이 곳은 지저분한 곳이라고 인식이 되어서 저또한 막 대했던 것 같습니다. 청소도 가속이 되니 빨리 진행됩니다. 지저분한 것들을 정리하고 버리고 일부는 빨래통에 넣고 안의 내면은 젖은 물티슈로 다 닦아 냅니다. 아까전 지저분했을때랑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당장입을 빨래한 속옷을 예쁘게 챙겨서 쌓아두고 다음 라운딩을 위한 골프용품들도 차분히 정리해 둡니다. 당장 제가 서랍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짐을 체험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지저분한 공간은 더 지저분하게 쓰고 깨끗한 공간은 더 소중히 여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누군가가 실험을 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이론입니다. 이 법칙은 필립 짐바르도라는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실험한 내용으로 유리창이 깨져 있으면 그 곳으로 범죄가 일어날 확률이 증가한다는 이론입니다. 실제로 이 이론을 토대로 1980년대 미국 지하철 내의 모든 낙서와 지저분한 쓰레기들 뿐만 아니라 역사내를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자 범죄율이 약 75%가 줄어든 것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군의관 시절 읽었던 설득의 법칙이란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뭔가 불만스러운 상황일때 우선 주위를 청소하는 것을 일순위로 두는 근간이 되는 이론이 되었습니다. 청소를 함으로써 분노든 절망감이든 흥분이든 때론 실패에 기인한 우울한 감정을 청소라는 행위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만족감을 얻고  점진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는 경우을 많이 했습니다. 
 
 
딸아이의 방에 있는 그 지저분하던 침대는 결국 가족 모든 구성원들이 더 지저분하게 사용했고 결국  침대 뿐만 아니라 그 방자체를 더 비위생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청소가 끝난 밤에 아내와 같이 들어간 방은 너무 화사해졌습니다. 침대에 가려져 있던 창문이 개방되고 창밖으로 가로등이 아름답게 보였으며 침대가 있던 자리에 놓아둔 목재 의자에 앉아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 방의 매력을 체험합니다.
 
 
위의 법칙에서 처럼 한번 지저분해지기 시작하면 관성이 붙어서 더 지저분해지고 반대로 깨끗하게 유지되는 곳은 더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할려고 합니다. 인간관계로 영역을 확대할 경우 누군가에게 잘보이고 싶거나 관계가 아주 좋았던 사람이라면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 더 세심하게 신경쓰는것 같습니다.  반대로 마음속으로 한번 아니다라고 규정했던 사람 혹은 몇 번의 경험으로 부정적인 느낌의 사람이라면  그 이후로 어떠한 평가도 뒤로한채 불필요한 불신만이 더 가중되는 경험을 합니다.

방을 다 치우고 나서 침대가 있던 그 자리에 진가를 확인했듯 인간관계도 묵혀둔 섣부른 판단보다는 때로는 마음의 선입견이라는 때를 한번 청소하고 나서 다시 관찰하는 것도 섣부른 예단의 실수를 줄일수 있는 방법이지 않나 문득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