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나는 글

말 그 생명의 힘 !!

서리풀 김박사 2024. 4. 5. 18:00

 

 
 봄의 기운이 만연합니다. 출근길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잠깐 바라본 저희집 정원에 까치 한마리가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 잔듸밭에 머리를 움츠리고 한참을 바닥을 응시합니다. 저는 그 모양새가 신기해서 출근길에 자리를 멈추고 가만히 서서 까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오전 8시경이라 조금은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얆게 입은 저의 흰색 라운드티의 소매품으로 이젠 제법 포근한 공기가 옷깃을 타고 몸의 내부에 전해집니다. 이젠 진정한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의 절정 입구에 와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기분 좋은날 오히려 어깨는 더 처지고 웬지 모를 불안감이 저를 잠깐 엄습합니다.
 
보통 남자들은 가을을 많이 탄다고 하지만 저는 20살초반 이후로 봄을 많이 탔던것 같습니다. 항상 갑자기 변화하는 주위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시가가 꼭 봄이기에 봄만 되면 뭔가 새로우면서도 불안정한 세상에 첫발을 내딪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유독 봄이 되면 뭔가 우울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는지 약간은 위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5월을 넘어 6월이 되면 거짓말처럼 그런 증상이 사라집니다. 남자가 가을을 타는 이유는 갑자기 변한 날씨로 인해서 피하지방이 여성보다 남성이 더 얇기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저는 책에서 본적이 있지만 봄을 타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학입시의 실패이후 재수의 길에 들어설때 그 실패의 기분과 낯선 서울땅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숙식을 하며 지냈던 어색했던 기숙사 생활이 예민했던 시절과 맞물려서 그런 기분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부모님의 기대감으로 인한 책임감과 잘해낼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그리고 저와는 맞지 않는 여러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어우러져서 이 시기만 되면 습관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오랜시간 느꼈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었던 생각은 혹시 내가 봄만되면 이런 감정에 길들여져서 스스로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적이 많았기에 저는 이런 기분을 타파하기 위하여 혼자서 여러 노력들을 해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뜨거운 했볕이 드는 초여름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냥 이런 기분의 변곡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그렇게 세월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뜻밖의 기회로 일정부분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보다 오히려  입밖으로 자주언어로 표현할때 그 힘이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언어에는 그 내용이 긍정적인 말일 경우 아주강한 힘이 있습니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자꾸 입밖으로 말을 꺼냅니다. 계속 입밖으로 주문처럼 말하며 그 사실을 다시 뇌가 인지하도록 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의외로 효과가 좋았고 내가 그런 말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진정 입밖으로 진심으로 꺼내는 말에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모든 그런 감정들이나 우울감들이 100프로 사라진 건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습니다. 입밖으로 나의 현재의 심경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너가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주기 객관적으로 인지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에게 알려주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해주기 등 몇가지 아름다운 언어로 생명력을 넣어 주었을때 눈으로 보고 책으로  생각한것 보다 아주 많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백프로는 아니지만 70프로 이상 좋아졌습니다. 일전에 친한 정신과 선생님과 술을 한잔 하다가 저의 이런점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한국인한테 많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병이라고 합니다. 다 그런건 아니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종류는 다를뿐 꾀나 많다고 합니다. 가령 힘들었던 기억이 있으면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런 전조증상만 보이면 뇌가 불안감에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힘듦과 봄햇살이 동시에 반응했다고 합니다. 봄을 탄다는 얘기보단 봄 특유의 느낌이 있을때 그 당시 안좋았던 기억들을 뇌가 소환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처음에 웃어 넘겼지만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큰소리로 마법처럼 주문을 외우면 생명의 언어는 힘을 주고 그 어떤 치료법이나 방법들보다도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 특히 약간은 가쁜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을 걸을때 그 효과는 최대가 됩니다. 바쁜 걸음속에 숨쉬는 나의 생명의 세포들 그 한자락 한자락에 좋은 감정을 넣어주어서 나 자신에게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할때 우리 몸은 바로 그 사실을 인식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하는 이런 말들이 나 자신에게 이렇게 이로운데 상대방에게 하는 말들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한디로 천냥빛을 갚는다. 혹은 혀밑에 도끼가 있다등 예전부터 내려오는 선인들의 속담에도 이런 경험치가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생명의 그 힘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살리듯 남도 생명의 힘을 불어 넣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남을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겐 생명의 반대의 개념으로도 쓰일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 최소한 침묵만도 못한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말의 그 힘 때론 제어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기에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소중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잠시라도 무의식에 내버려두면 생각나는 데로 마음껏 요동칠수 있기에 불처럼 조심히 다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새들이 참 많이도 날아드는 정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