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나는 글

이열치열[以熱治熱]

서리풀 김박사 2024. 8. 5. 16:36

 



한낮의 더위가 모든것을 녹이려 드는 절정의 여름, 몇일전 저는 한통의 문자를 받게 됩니다. 문자의 내용은 혹서기 이벤트로 7월 29일 부터 8월 14일까지 제가 좋아하는 태광 cc에서 2인플레이를 허용한다는 문자였습니다.

사실 지방이나 제주에 있는 골프장을 제외하고 2인 플레이를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간혹 고급 골프장중에 회원들에 제한적으로 주중에 2인플레이를 허락해 주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실상 서울 근교에 있는 골프장에서 2인 플레이를 주말에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이벤트 였습니다. 제가 문자를 받고 나서 날씨가 더워 고민이 되었지만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이런 더위에 누가 골프치냐고 반대를 심하게 했지만 정성이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법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자로 정해져서 결국은 라운딩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몇일전 부터 계속 주의를 집중시키는 경고음 긴급문자가 날라옵니다. 너무 더우니 야외 활동을 자제해달라는 문자입니다. 심지어 프로야구 사상 최로로 너무 더워서 야구가 취소되는 일이 발생할 정도로 한낮의 기온은 체감으로 40도가 넘어갑니다. 아내에게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고 큰소리 치며 일요일 점심 정확히 12시 47분티로 예약을 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걱정이 앞섭니다.


내가 만약 그 마음을 표시내면 더 혼란스러울까 겉으론 뭐 준비해서 잘 치면되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토요일 저녁 네이버 날씨로 다음날을 검색해 봅니다. 용인의 한낮은 대략 34도 붉은색 글자로 표기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약 8년전 강남 300 골프장에서 지금과 비슷한 날씨에 라운딩 후 더위를 심하게 먹어서 힘들었던 추억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한여름 낮골프는 기억에서 지웠는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지 또다시 실수를 반복합니다. 
 


얼굴을 철저히 가렸지만 오른손등은 자외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라운딩 당일이 되고 아내는 역시 여자이기에 많은 준비를 합니다. 얼굴 전면에 붙이는 팩으로 자외선을 차단하고 그 위에 얼굴을 덮는 천을 준비해 줍니다. 그리고 보스턴 백을 제외한 작은 휴대용 가방을 준비해서 얼음 주머니와 둘이 나눠먹을 수 있는 수박과 그리고 열을 식혀주는 오이며 더운 여름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들은 전날 저녁 부지런히 준비해서 냉장고에 보관한 것들을 냉온 가방으로 옮겨서 출발전에 차에 싣습니다.

평상시에도 워낙 알뜰한 사람이라 골프장은 밥과 차가 비싸다고 식사는 집앞에서 하고 가자고 합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준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휴대폰 충전기 옆에 두고 그렇게 골프장으로 향합니다. 오전 11시이지만 벌써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바닥에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걱정반으로 골프장에 도착해서 미리 준비한 옷으로 환복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얼굴 여러 부위에 준비해둔 팩으로 가리고 많은 준비를 한 끝에 드디어 시간이 되어서 골프 라운딩을 시작합니다.
 

카트에 단 2개의 백만 보입니다. 다시 경험하기 힘든 이벤트였습니다.



십여미터 뒤에서 바라본 저희팀의 카트는 일반적이라면 4개의 골프백으로 꽉차 있어야 겠지만 2인 플레이라 두개만 보이는 상황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동코스1홀로 향하는 오르막길입니다.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라운딩 시간이 되어서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캐디분과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언덕을 올라 라운딩을 하는 동코스 1번홀로 향합니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 청솔모 새끼가 주위에서 어슬렁 거립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일까요. 보통이면 사람들을 많이 경계해야 겠지만 계속 카트 주위에서 관심을 유도합니다. 진행을 위해 얼른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 녀석을 빨리 보낸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너무 귀여운 청솔모로 추정되는 새끼입니다.



앞팀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뒤팀도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날씨가 더워서 12시를 기준으로 몇팀이 예약을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드넓은 골프장에 숲들 사이로 간간히 사람들이 보일뿐 앞뒤로 아무도 없습니다. 황제 골프를 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8홀에 가서야 저희가 앞팀을 따라갑니다. 앞팀은 4인이고 저희팀은 2인이다 보니 아내가 아무리 초보라 해도 거의 따라 잡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너무 단단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해서인지 조금 덥기는 하지만 아내랑 이정도면 할만한데 하고 웃으며 9홀을 마무리 합니다. 대기 시간이 약 30분정도 되기에 클럽하우스 내에 카페로 들어갑니다. 그냥 있긴 뭐해서 저는 안주없이 맥주 한캔을 아내는 아이스커피 하나를 주문했습니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아무래도 더워서 그런지 맥주가 너무 맛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휴식시간이 지나고 밖으로 나오니 오후  3시가 다 되어서는 더위가 절정에 이릅니다. 맥주로 인한 열기가 이제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체감 40도를 넘어가는 고온에 맥주로 인한 열기가 더해져서 얼굴 주위로 열이 발생합니다. 골프가 자연히 잘 될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전반전과 2홀까지는 괜찮은 성적으로 버텼는데 3홀쯤 되니 머리가 핑도는 느낌입니다. 샷도 엉그러지고 집중력이 현저히 저하되어서  최근에 해본적도 없는 생크가 두번이 납니다. 아무래도 힘이 들어 중심축이 무너지다 보니 몸이 너무 빨리 돌아서 손과의 거리가 멀어진 걸로 예상이 됩니다.

저에게 다시 주문합니다. "정신차려"  얼음팩을 머리에대고 한참을 있으니 나갔던 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렇게 멘탈을 부여잡고 18홀을 끝냈습니다. 아까전 2번의 생크가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약 2년전 생크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혹시 또 고질병이 노출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에이밍하는 모습을 아내가 찍어주었습니다. 보통 남자들은 이런 경우가 없어서 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신기합니다.
신중하게 티를 꽂습니다. 저는 티높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약간 높은 경우는 슬라이스 구질을 낮은 경우는 훅구질로 사용합니다.
하늘이 참 맑습니다. 더운 날씨만 아니면 잔듸도 좋고 완벽합니다.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사진도 찍어 봅니다.




제가 놀랜건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몇일전 정확히 8월 1일에도 똑같은 시간에 친한 언니들이랑 진양밸리로 대낮 라운딩을 했을때도 너무 멀쩡했고 오늘도 이런 혹서기 에도 너무나 멀쩡합니다. 저만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등은 시커멓게 익었고 약간은 맛탱이간 간 귤처럼 축쳐진 상태였지만 제가 평상시 체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내는 너무 멀쩡했습니다. 전혀 후유증도 없었습니다.


섭씨 26도의 차가운 탕물에 정신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고 오후 5시가 넘어서 골프장을 나섭니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저는 단호히 집에 가서 쉬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올림픽 결과가 궁금해서 검색하다 보니 오늘 체감 50도로 잠실구장 야구가 취소라는 헤드라인 뉴스가 보입니다. 속으로 말합니다. 충분히 그럴만 했다. 무사히 잘끝내고 온거에 감사합니다. 라고 되뇌었습니다. 

 
어제의 여파로 오늘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매우 피곤합니다.  오른손등이 약간 따끔거립니다. 
내심 어제의 생크가 마음에 걸립니다. 점심을 일찍먹고 골프 연습장으로 향합니다. 너무나 더워서 그런지 사람이 없습니다. 원인을 확인했기에 잠깐이나마 실행해 봅니다. 몸을 잡고 움직이지 않고 어제의 생크를 복기해 봅니다. 의도적으로 몸을 잡고 치니 생크가 나지않고 공이 일직선으로 잘 나갑니다. 그렇게 30여분동안 약 50여개의 공과 어제 놓쳤던 30m 어프로치를 집중적으로 연습합니다. 역시 앞핀일경우 어프로치가 쉽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좀더 섬세한 플레이가 필요한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오른손등이 시커멓게 익었습니다. 약간은 붉은 빛도 보입니다. 아마도 밤새 긁어서 그런게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이젠 진료가 시작하는 2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골프채를 놓으며 오른손등을 한참을 바라다 봅니다. 어제 아무런 준비가 되어었지 않은 유일한 노출되 신체 부위라 그런지 새까맣게 그을렸습니다.

골프채를 정리하며 나에게 말합니다.
 
" 너도 진짜 골프에 미치긴 미쳤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