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모음집

겨울비

서리풀 김박사 2023. 11. 17. 12:30

진료가 조금 늦어저서 점심을  먹으러 허겁지겁 문밖을 나섭니다.  병원 내부는 다들 기다렸던 점심시간이라 황급히 정리하고 모두가 밖으로 나가서 그런지 데스크를 지키는 직원의 키보드 소리만 들릴 뿐 방금전까지 병원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의 흔적은 철지난 해수욕장처럼 갑자기 텅빈 느낌입니다. 저도 부랴부랴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디건만 걸친채 수술복 차림으로 식사자리로 발길을 옮김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에 원장실 한켠에 있던 낡은 검은색 우산 하나를 챙겨서 칼국수 집으로 향합니다. 아마도 쌀쌀해진 날씨와 지난밤 먹은 막걸리 때문인지 얼큰한 국물의 칼국수가 생각나서 병원뒤  5 평 남짓 가게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합니다. 
 
늘 그렇듯 한두명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메뉴를 시키고 창밖을 내다봅니다. 식사 시간만큼은 휴대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약속에 폰은 충전기에 두고 왔기에 갑자기 할일은 잃은 두손과 습관들은 평상시 보지않던 창문 너머를 주시합니다. 어쩌면 이른 추위에 눈이 될뻔했던 겨울비가 놀이터 은행나무사이로 너무 자세히 빗줄기가 보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는 유독 쓸쓸하고 구슬프게 느껴집니다. 학생시절에도 그랬고 조금은 나이든 지금도 마찮가지입니다. 차가운 빗방울 자락에 마지막까지 버티던 은행나무 잎들이 빗방울의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차가운 빗방울 습기 가득머금은 낙엽은 그들끼리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하나의 군락이 되어 힘없이 물의 흐름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떨어진 낙엽은

봄햇살의 따스함과
소나기 퍼붓던 무더운 여름날의 추억과
새소리 지저귀고 온갖 곤충이며 벌레며 다같이 아옹다웅 살붓이던 기억과
첫서리 내리던 그날의 쓸쓸함과
화려하게 물들었던 늦가을의 추억까지
모두다 간직한 채로

마지막 남은 소원은
일렁이는 따뜻한 바람이나 때이른 첫눈과 함께
허공을 나부끼며 아름다운 작별을 하는 것

하지만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 지지않고
길바닥에 버려진 현실을 마주하는 것 아마도 꿈이 산산조각 나서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때늦은 비는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첫눈이 되고 싶었던 간절함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절망감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에  울부짖으며 원망가득 차가운 한으로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시간이 제법 지나 제가 시켰던 약간은 얼큰한 칼국수가 나왔습니다. 어머니의 손크기 만큼이나 음식이 풍성합니다. 역시 김치가 모든 음식맛의 기본이기에 갓담근 김치와 칼국수를 먹으며 어제의 숙취를 달랩니다. 조금은 허기져서 옹색해진 제 마음은 약간은 여유를 갖게되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는 것도 큰 지분이 있기에 가성비 좋은 칼국수 한그릇 먹으며 차가운 겨울비의 감성에서 현실로 다시 나와 버립니다.

방금전까지 느꼈던 겨울비가 이렇게 슬픈이유는 개인적으로 마지막까지 바랬던 간절했던 저의 기도와 펴보지도 못하고 시작도 못했던 과거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투영되어서 슬픈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유독 쓸쓸하고 구슬프다
차가운 빗방울 자락에
앙상한 나뭇가지 마지막 남은 낙엽은
물기 가득물고 떨어져서
바닥에 힘없이 나뒹군다.
 
나의 마지막 소원은 
아름다운 때이른 첫눈과 허공을 가로지르며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는데
때늦은 겨울비에 내 꿈은 산산 조각이났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첫 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비는 커다란 아쉬움을 아냐고
나에게 말해준다.

아마도 겨울비가 나에게 너무 슬픈건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간절한 기도와
펴보지도 못한 나의 진한 아쉬움이 생각났기에

빛깔이 곱디곱고 하늘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눈이 되지 못하고 
비가 된 슬픈 사연이  너무 안타깝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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