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남독녀인 고등학생 제 딸아이는 약 두달간의 방학을 끝내고 몇 일전 기숙학교로 3개나 되는 큰 상자로 잘 포장된 택배를 본인의 학교로 먼저 보내고 그렇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퇴근하고 보니 거실과 주방에는 조명등만 은은히 켜져 있고 공간의 부피를 채우던 소리가 사라져서인지 거실이 오늘따라 너무 넓게 느껴집니다. 옜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듯 방학중 딸을 돌보기 위해 같이 와주신 장모님도 댁으로 돌아가시고 말수가 비교적 없는 아내와 강아지 두마리 뿐이라서 그런지 너무 조용하게 느껴집니다.
병원도 8월초를 기점으로 우연히도 3명의 직원들이 그만두었습니다. 한명은 출산을 위해 한명은 개인적으로 한명은 육아휴직이라는 사정에 의해서 병원 인력의 절반 가량이 갑자기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8월초 어느날은 병원 출근하고 새로 보는 직원들이 있어서인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한명도 아니고 3명의 빈자리는 저에게 꾀나 많이 변했다는 그런 일차원적인 의미 이상으로 굉장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치과 일이라면 다른 병원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병원에서는 스텝과 원장 그리고 중재해주는 실장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이 철저히 분업화 되었기에 그 간극이 빨리 매워져야 합니다. 진료의 중심인 저의 의미나 메세지중 언어 너머의 의미를 빨리 알아야 합니다. 오래 진료하다 보면 자연스레 직원들이 채득하지만 지금은 차트를 통해서나 저의 직접적인 말을 통해서 일차원적인 의미만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메세지는 제가 직접 실장님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은 결국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결국에는 빈자리는 무엇인가에 의해 대체되어집니다. 그렇게 딸아이가 있던 두달간 자식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조용해진 집에서 빈 공간들이 부부만의 그것으로 다시 채워집니다.
간혹 대화중 의견이 맞지 않아서 충돌이 있기도 하지만 딸아이가 차지하던 공간은 우리 부부의 진솔한 대화와 미래의 계획 음악이 전공이 아내와 전반적인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등 더욱 밀도있는 또 다른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거실 가득 메우던 아이의 웃음 소리는 따뜻한 부부간의 온기가 그 공간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병원도 이제 3주가 넘어가고 시간이 지나니 바뀐 직원들의 우선 일차원적인 이름이 외워지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스타일들이 들어옵니다. 경력직 직원분들이 들어와서인지 아주 빠른 시간에 일에 적응해가고 저도 조금은 더 익숙해져 갑니다.
더욱 제가 느꼈던건 기존 일하고 있던 직원들의 고마움입니다. 아직은 어색한 공간을 채우는 이 기간동안 든든한 표식자가 되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마도 예전 직원들하고 성향은 다들 다르지만 틈 사이에서 긍정적인 격자들이 채워지고 있음을 진료중 느낍니다.
그렇게 절대적인건 없는 것 같습니다. 혼란한 시간도 어색한 공간도 모두 서로간의 따뜻한 노력만 있다면 기존보다도 더욱 다채롭게 변화 될수 있다는 걸 채감한 8월 후반기 입니다. 처서가 지나갑니다. 거짓말처럼 밤에는 조금 덜 더운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시기는 더운 여름과 같이 혼합되어 제 기억에 혼란한 빈공간을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던 시기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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