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에 아내의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른 준비를 위하여 집을 비우게 되어 저는 간만에 긴시간 집에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오랜만에 오전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고 여유를 느끼며 저희 살림을 돌봐주시는 장모님과 정말 오랜만에 집근처 고깃집에서 둘이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음식은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갈비살을 사드렸습니다. 저는 전날 회식때 먹은 과도한 기름진 안주와 오늘 점심에 먹은 고기가 같이 부대껴서 오후에는 꾀나 속히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해서 조금은 추워진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뚜께가 꾀나 나가는 패딩으로 무장을 하고 산책하기 편하게 위아래 골프복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집을 출발하여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해는 하루의 끝을 알리기라도 하듯 우면산쪽으로 그 허리만 살짝 드러낸채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고 산등성이 뒤로 몸을 숨깁니다. 해의 지배가 사라진 공간은 쌀쌀함이라는 질감으로 가득 제 피부를 자극합니다. 우리 동네인 서초3동을 크게 돌자라는 꾀나 듬성한 계획으로 사랑의 교회쪽으로 출발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한발자욱씩 자리를 옮깁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껴입은 옷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교회를 지나 서울 교대를 돌고 예술의 전당쪽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그렇게 벌써 출발한지 한시간 가량 지나고 빠른 걸음 때문인지 아니면 오르막으로 계속 내딪었던 방향 때문이었는지 거친 숨결에 귀가에 들리던 멜로디보단 저의 숨소리가 더 크게 요동을 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짦은 거리를 급경사로 내려갑니다. 상문고등학교를 지나 서울고 입구에 다다른 후 본능적으로 우리집 바로 뒤쪽에 있는 서울고 운동장으로 향합니다. 이 고등학교는 워낙 우리동네에서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꾀나 넓은 학교인데 감사하게도 주민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운동장 문을 개방해 두어서 많은 주민들이 이용합니다. 특히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지만 일요일 영하의 날씨라 그런지 인적이 드뭅니다.
정리되지 못한 나의 몇가지 일들을 출발하면서 하나씩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생각하니 어떤 일들은 수월하게 그 방향이 제시 되지만 또 다른 일들은 생각속에 더 많은 가지로 인하여 조금은 혼란스럽습니다.
그렇게 정리되지 못한 감정으로 고등학교 정문에 들어서서 고개를 숙인채 무작정 걷습니다. 꾀나 직선으로 오래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얕은 산책길의 트랙을 지나서 벌써 운동장을 두바퀴나 돌고 있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지나온 길을 돌아 봤습니다. 분명 나는 직선으로 계속 걸었던 것 같은데 내가 지나온 길은 직선길은 그저 두군데 뿐 꾀나 완만했던 곡선들과 야구부 숙소를 지나는 꾀나 급한 경사의 곳까지 정말 다양한 길들이 존재했습니다.
나는 아래만 보고 걸었기에 몰랐을뿐 그 길들은 연결하니 다양한 굽이의 점들이 하나의 긴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지나온 세월들을 잠깐 생각햅 봅니다. 이제 몇일 뒤면 한국나이로 50이 됩니다. (예전 공자님은 50세면 지천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하늘의 섭리를 깨우친다는 그런 나이가 됩니다.) 나는 이 운동장을 돌듯 다양한 종류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내가 무탈했고 평안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심한 굴곡이 있던 시간이었고 죽도록 힘들었던 그런 곡선이라고 생각했던 세월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지금을 만들어준 쭉 뻗어 있던 직선의 시간이자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발전을 가져왔던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지나고 봐야 어떤 길인지 가늠되어질뿐 현재의 나는 그저 아래만 보고 걷은 그저 오늘 하루 하나의 점을 만드는 시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 . 오늘하루 동안 이렇게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마음속으로는 너무나 굴곡진 부분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저 지나면 하나의 점이라는 사실을 운동장을 돌면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지천명이라는 뜻을 음미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오를 하루의 점을 정성스럽게 남기는 것이 부족한 제가 할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상기합니다. 그렇게 문득 추운 일요일 저녁 멍하니 텅빈 운동장을 돌아보며 50년동안의 삶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봅니다. 그렇게 오늘도 하나의 작은 점을 찍으며 앞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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