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진료로 분주했던 외래 진료실 오후 5시 정도가 되니 병원은 이제 여름이 끝난 해수욕장 처럼 방금전의 분주함과는 다르게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내 방에 틀어놓은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슬픈 멜로디만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대기실에 들릴뿐 언제 그랬냐는 듯 병원안는 데스크 여직원의 헛기침만 유독 크게 들렸다. 그렇게 일정을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원장실 의자에 앉았다. 머리까지 완전히 기댄채 의자를 약 180도 회전시켜 나의 시선은 지겹도록 보는 컴퓨터 화면 대신에 억지로 창밖의 도로를 응시했다. 아마도 내가 이런 행위를 했던건 오후 첫 진료에 보았던 환자분의 생각이 너무 강렬해서 조절되지 않는 나의 감정을 저기 보이는 하늘에 어느정도 덜어내고 싶은 생각이 강해서인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 정각 2시 작은 보조 휠체어에 기대어 한 어르신이 들어오신다. 바지는 착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스판으로 만들어진 곤색 계열 들려진 약봉지와 어우러져 대조적으로 인상적이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따님이 본인의 아버지를 모시고 오느라 더운 여름 조금은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하게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고 이런 아내를 돕기 위해 얼굴이 아주 반듯한 인상을 주었던 그녀의 남편은 본인의 부모님처럼 거동이 불편한 장인어른을 성심성의껏 부축하고 안내했다.
이 환자분은 내가 아주 잘 아는분이시다. 치료를 했던 불과 2년전만해도 약간의 치매증상의 초기라 의료진인 나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나 변한 모습에 나도 놀랐다. 내가 이처럼 이 분이 기억이 남은건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이며 외모며 비슷한 면이 너무 많았다. 아버님은 직업군인이셨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같이 오셨던 어머님은 저에게 아버님의 치아위생에 관해서 의사의 입장에서 단호하게 잘 명령을 해달라고 가끔 부탁하셨다. 나는 아마도 계급이 엄격했던 군대에서 오래 생활한 직업적 특성 때문에 의사의 엄격한 요구가 아마도 아버님께는 효과적으라고 어머니가 생각한듯 했다. 그렇게 치료를 하는 나도 항상 친아버지를 진료하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치료해 드렸고 설명도 열심히 드렸다. 아버님도 상악 전악 이라는 긴 수술동안 너무 협조도 잘해주시고 사람의 가는 마음은 잘 읽히듯 나의 이런 마음이 잘 전달되었는지 정말 잘 도와주시고 협조해 주셨다.
이렇게 아버님이 몇년 사이에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몸이 많이 불편해지신 모습을 뵈니 오늘따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조금 흘러내리는 눈물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원장실에 앉아서 급하게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한참을 돌아앉아서 생각했던건 엄하셨던 아버지의 훈육이었다. 어릴적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게 받았던 훈육들 가끔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엄격했지만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이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내가 왜 갑자기 어르신을 뵙고 아버지가 그리도 깊에 떠올랐을까 평상시 목이 마르면 물이 먹고 싶어지듯 지금은 아이로 돌아가 그 엄했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유독 필요하다고 느꼈거나 아나면 나를 태산처럼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셨던 그런 절대적인 힘이 그리웠는 지도 모른다. 요즘의 삶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인은 그것이었다.
요즘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쉽게 말해서 나를 가르칠 누군가가 거의 없어졌다. 유년기는 어머니가 청소년기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대학시절에도 아버지의 존재가 멀리 있지만 유독 가까이 느껴졌다. 수련시절부터는 지금의 지도 교수님이 일정부분 병원생활과 더불어 어는정도 인생관에 대해서 지금도 그렇지만 지도를 많이 해주셨다. 지금은 그런 존재들이 많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교수님은 이제 50이 넘은 제자에게 25년전처럼 그렇게 대하지 않으신다. 정말 예의있고 정중하게 말씀해 주신다. 나도 아직 어려운 마음은 있지만 교수님이 나이 많은 제자를 대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지셨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나의 기본적인 생활만 관심이 있다. 연세가 드시니 이젠 나를 유아기 시절처럼 대하신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수준에의 지적만 해주신다. 밥은 잘 먹었나, 차 조심해라 등등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계속 되풀이 된다. 내가 존경심을 가지는 친구와 지인 몇 명만이 나의 삶의 희미한 등대가 되어줄뿐 이젠 친구간에도 예절을 너무 중시하기에 나를 예전처럼 엄격하게 훈육하는 존재가 사라졌다. 이젠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그럴수록 요즘의 나를 돌아보면 좁아진 식견과 낮아진 도덕적 잦대가 웬지 모를 불안감이 감싸 올때가 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응시한다. 고개를 살짝들어보니 원장실 진열장 사이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세례증서가 보인다. 결국 해답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때 나는 그렇게 또 하나님을 찾았다. 정말 이기적이었다. 너무나 힘들고 의지가 필요할땐 그럴때만 또 하나님을 찾았다. 그분은 여전히 그대로 계셨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내 마음을 내려놓을때 여전히 내 옆에 언제나 계셨음을 이번에도 확인했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결국 오후에 뵈었던 환자분을 통해서 아버지가 나를 이 길로 안내했다. 나는 진실로 나의 길에 관해서 마음을 받쳐서 기도를 드렸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누군가 이렇게 나를 지켜봐 주심을 확인했다.
시편의 한구절로 지금 나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