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중이라 확인하지 않은 핸드폰에 문자 알림이 와있다. 아마도 저장이 되지않은 번호인 걸로 유추해보면 택배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을 어렴풋이 보니 우리집 현관이 절반정도 보이게 약 두자 내외의 황색 테잎으로 잘 밀봉된 상자가 찍힌 택배를 옳기신 분이 보낸 문자였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내용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혀있지 않았다.
주소지를 보니 시골에서 어머니가 보내신 택배였다. 진료가 바빠서 전화를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내용물이 궁금하고 혹시라도 상하는 물건일수도 있으니 퇴근후 곧장 집으로 향했다. 턱이 제법 놓은 대문을 쏜살같이 담장넘듯 뛰어서 택배가 놓여있는 현관으로 향했다.
시골에서 보내는 택배라면 대략 짐작은 되었지만 혹시나 상할까봐 제법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서서 식탁 가장자리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조그만 함에서 택배상자 제거용 가위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가위를 따로 두는건 아무래도 요즘 택배 상자가 견고해져서 상자를 힘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전문 가위가 필요했다. 뭐 특별히 제작된 가위는 아니고 이제는 너무 많은 택배를 분해하는 작업을 같이해서 이가 조금은 무뎌지고 갈리고 크기가 여느 음식물을 절단하는 가위에 비해서는 조금 크고 투박스러운 것 이외에는 다른 차이점은 없다
그렇게 상자를 식탁까지 옮기고 가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끈을 먼저 자르고 약간은 진갈색의 스키치 테이프를 가위의 절단연을 이용해서 종으로 자른뒤 내용물이 상할까 조심스레 열어본다. 상자에는 이런 내 정성스런 행위와는 조금은 반대편에 있는 흙을 가득 머금은 보통의 것보다도 씨알도 작고 겉모습 만으로는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고구마 였다.
나는 식탁아래 보관해둔 고구마 너댓개는 충분히 담을 만한 크기의 냄비를 고르고 수돗물을 최대로 수압을 올려서 고구마에 묻어있는 흙이며 지저분한 토사물들을 아주 강박적으로 씻어냈다. 나는 고구마의 껍질까지 같이 먹는 버릇이 있어서 다른 음식은 몰라도 고구마는 운전도 그러하듯 남에게 잘 맞기지 않고 직접하는 편이었다. 적당한 불조절과 시간 삶아내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짧은 시간을 삶으면 생기가 너무 넘쳐서 단단해지거나 아니면 불어서 못먹는 라면처럼 그 고유의 맛을 잃어버린다.
늘 그러하듯 정성스레 고구마를 삶았다. 보내주신 저 고구마를 다 먹기도 전에 높은 실내 온도로 싹이 틀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뒷배란다에 오랜 보관하다가 다 못먹을수도 있으니 최대한 처음 시골에서 온 음식의 전체의 3분지는 최선을 다해서 먹을려고 한다. 그것이 보내준 분한테 성의라고 나름 엄격히 생각했다.
그렇게 물이 끓고 나는 고구마의 익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과일을 먹는 용도로 만들어지 홀쭉한 포크로 중간부분과 가장자리를 투박하게 쿡쿡찌르며 익힘 정도를 확인했다. 약 20여분 정도 삶으니 내가 즐겨먹는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평상시 보내주신 그것보다 크기가 작고 조금은 외형이 볼품이 없어서인지 기존의 고구마보다도 약 5분정도 빨리 익혀졌다.
나는 고구마를 담은 용기를 냄비에서 용감하게 간단히 고무장갑을 끼고 분리했다. 평상시에는 누구보다 소심한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대담해진다. 아마도 사람마다 마음의 부피가 주위의 압력에 영향을 받지만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대담한것 같다. 그리고 항상 물려서 고생하는 주식투자처럼.....
잘익은 고구마를 아직 씽크대 주위로 뜨거운 물을 비우고 내 한뼘쯤 되는 접시에다가 몇개를 담았다. 고구마를 반으로 갈랐다. 이번 고구마는 평상시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황금색 빛깔이었다. 왜그랬을까 그 고구마를 보자 나는 눈물이 났다. 갑자기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 너무 일찍 와버린 갱년기 증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설명이 부족했다.
약 한달하고 보름전 아침에 어머니가 다급 하지는 않았지만 밤새 속내를 숨기는게 조금은 힘들었는듯 9년전 암수술 한 부위에서 고름이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거의 십년이 다되어가지만 거의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끝내셨기에 간신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났는데 그 상처를 내부에서 곪았던 것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의학적 지식이 전혀없는 어머니가 생각하셔도 큰일이 다시 생길수도 있다는 불안한 징조였다. 그렇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물론 호흡을 숨길수는 없었지만 병원을 가면 된다고 너무 걱정마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또 한달간 여러번의 검사와 치료를 받으셨다. 두번이나 대학병원을 옮겨가며 지금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과거의 기억과 한달 이상을 싸웠다. 고구마는 병원에 입원하시는 동안에 그리고 치료가 한참인 시기에 서초동 집으로 보내신 거였다.
내가 고구마를 보고 그렇게 눈물이 흘렸던건 그 와중에도 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가장 좋은 것만 보내주셨다는 사실이었다. 그 절망적 상황에서도 자식에게는 작은거라도 최고로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너무나 슬프게 다가왔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숨겨왔던 걱정이 고구마를 통해서 투영되어 그렇게 눈물이 흘렀던것 같다.
다행히 지금 글을 쓰는 오늘을 기준으로 2일전 퇴원하셨다. 재발이 아니라 골수염진단 치료를 받으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 치료는 경과후 결정되지만 골수염이라면 재발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골수염조차도 감사히 느껴쪘다, 그렇게 나의 약 2달간의 일들의 키워드는 고구마 였다. 그것도 황금빛을 머금은 호박고구마....
오를 퇴근 무렵에 다시 전화를 드릴것이다.
지난번 너무 맛있었던 그 고구마를 다시 보내 달라고 어린시절처럼 떼를 쓰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