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진료에 임하다가 자리에 잠시 앉습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다른 요일에 비하여 조금은 바쁩니다. 허겁지겁 틈나는 대로 바쁜 일들을 챙기고 정리할 안건을 처리하고 원장실 책상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일을 보고 있는중 문자가 한통 와있습니다. 평상시 문자는 카톡에 비하여 잘 신경쓰지는 않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 봅니다. 그 내용은 얼마전 제 모교에 계시는 교수님의 어머님의 장례를 치루고 난뒤의 감사의 답장이었습니다.
제가 수련당시 직접 교수님께 배우지는 못했지만 학구적인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시라 학교 행사에서 마주칠때면 항상 서로 반갑게 안부를 전하고 가깝게 지내시는 분이셨습니다. 교수님이 저희 의국원들에 보낸 문자는 상당한 장문의 문자였지만 특히 마지막 구절이 제게 많이 와닿습니다. "아직은 힘들지만 다음 모임까지 밝은 모습을 회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교수님은 저보다 나이가 8살정도 많으시니 저도 이런 일들이 남일같지 않아서 더 가슴에 와닿는것 같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외할머니와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친척 어르신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 의례 통과 하는 절차처럼 조금은 슬프지만 그저 지나가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는 저를 너무 귀여워해 주시던 할머니들의 죽음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지만 그 슬럼프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에 반해 아버지나 어머니는 저에 비해 의외로 담담해 보이셨고 오랜만에 만난 형제분들과 대화만 계속 나누시고 상가집에 온 손님들만 응대할뿐 제가 보기엔 조용히 지나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날때쯤 돌아가신 두분의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할머니 두분을 보내드리고 몇 년뒤 그리고 간이 많이 안좋으셨던 아버지는 60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투병중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그 충격은 너무 컸고 과정부터 오히려 돌아시기고 나서 그리움이라는 후유증이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간직하고 몇년뒤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아프셔서 생사를 넘나드는 두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으니 어쩌면 이젠 나도 부모님이 안계시는 고아가 될수 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지만 어머니를 잘 치료해 드리자는 일념 하나로 2년 정도는 제가 가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간병에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당시 어머니는 서울대병원에서 몇시간에 걸쳐서 상당히 큰 수술을 받으셨고 극한의 통증과 공포속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만 무의식중에 찾고 계셨습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 아버지가 간암 말기 혼수 상태에서도 찾으셨던 분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얼마전 태어난 손녀였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상가집에서 보였던 건 그저 장례식을 원활히 치르기위해 감정을 숨기신 것이란걸 그리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가장 그리워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2년전 본원에 계시던 원장님의 어머니가 오랜 투병끝에 돌아가시고 몇일 뒤 부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저에게 이런 슬픔은 언제쯤이면 가라 앉을까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한 1-2년정도 지나면 좀 안정되요"라고 말씀드리고 그 뒤에 숨은 저의 의미는 생략하였습니다. 그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리움의 총량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짧게 대답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의국에서 뵈었던 그런 결기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교수님의 "다음 모습까지는 밝은 모습으로 뵙겠다"는 그 말씀이 유난히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가고 여자라면 출산을 해야하는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처럼 보통의 사람이라면 40대 부터 60대 사이에 겪는 이런 부모님과의 이별은 아마도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큰 인생의 통과의례입니다.
저는 이제 50에 들어서는 현 나이에 마음의 우울증의 원인중 하나로 부모님의 부재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겪고 힘들지만 저희 부모님처럼 많이 내색하지 않았던 그런 현재의 저의 상황처럼 제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항상 저의 곁에 계시지만 잠깐 외지로 유학와서 떨어져 있었던 학창시절처럼 잠시 떨어져 있다라는 생각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다시 예전처럼 물어본다면 위의 대답처럼 "어쩔수 없이 잠시떨어져 있는 거예요"라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교수님의 부고문자를 보며 다시 예전일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다시 뵐때 더 좋은 모습을 보일려고 노력했던 학창시절처럼 나중에 더 좋은 모습으로 뵐 수 있도록 현실의 옷 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습니다.
'살면서 생각나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일이란? (5) | 2025.02.13 |
---|---|
봉원사님 반갑습니다. (0) | 2025.01.20 |
딸아이와 함께한 겨울 골프(2024년 12월 29일 솔트베이 cc) (2) | 2025.01.06 |
지금 너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까? (1) | 2024.12.27 |
점과 선 (0) | 202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