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소위 새치가 너무 빨리 자라기에 염색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14년전 제기점에서 봉직의로 근무시에는 병원근처 저렴한 남성용 미용실에서 오징어 먹물 염색을 주로 하다가 청량리 지점 근처 지하 목욕탕에 있는 이용소를 이용한 뒤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며 월 1회정도 커트하고 3개월에 한번 정도 염색을 꾸준히 했습니다.
제가 목욕탕을 주로 이용한 이유는 목주위가 예민한 편이라 커트하고 난 뒤 머리카락이 목덜미와 옷사이에 닿는 느낌이 너무 싫어 탈의를 하고 나서 이발하고 염색뒤 바로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는 잇점도 컸고 비싸게 머리를 짤라봐야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두상이 장두형의 예쁜 형태라면 미용사가 최신으로 유행하는 커트나 다양한 본인만의 노하우나 실력을 뽐낼수 있겠지만 단두형의 제 두상은 스타일링하기가 어렵기에 몇 번 고급 미용실에 다니다가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바가지 머리로 단정함에 최선을 두자로 바꾸었고 염색과 컷트만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목욕탕에 계신 분들은 그 경력이 대략 30년은 족히 되셨기에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이발해 오셨고 저처럼 흔하지 않은 스타일도 많은 경험이 있을꺼라 생각되어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는 목욕탕이 금지가 되고 위험하다고 알려져서 경영악화로 쉬기전까지 거의 10년을 한 이용사분에게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5월 정들었던 청량리를 떠나 이 곳 미아로 온 후 다른 특별한 불편한 점은 없지만 은행이 청량리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과 제가 이발과 염색을 할 곳을 다시 바꿔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자 주말에 집근처인 서초동 근처의 목욕탕도 가보았지만 예전만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중 저희 병원 옆 지하에 있는 운산 사우나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이발도 같이 가능하기에 가보게 되었고 대신에 오후 2시면 이발이 종료가 된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출근을 평상시보다 1시간 정도 일찍해서 염색도 하고 머리도 깎으니 예전 청량리 시절에 느꼈던 편안함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발사님과 대화중 저한테 나이를 물으시길래 이제 곧 50이라고 말슴 드렸습니다. 이발사님의 첫째 아들과 거의 나이가 같았습니다. 그렇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정치 얘기를 필두로 저는 그냥 앉아있고 할 얘기가 많으셨는지 한달에 한 번 뵈는 저만 보면 아주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눈이 예전처럼 잘 안보이셔서 그런지 가위질도 천천히 하시지만 웬지 모를 편안함에 매달 이곳으로 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 헤어 스타일을 본 아내는 서초동 이용실이 더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아침일찍 고생스럽게 거기서 이발하냐고 저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웬지 의무감이 가미가 된 것 같습니다.
이발사님과 대화중 알게된 건 돌아가신 아버지랑 동갑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환자분들의 차트를 볼때나 어르신들의 나이를 볼때면 아버지의 출생년도인 1947년도에 집중합니다. 차트번호에 주민번호가 47로 시작하면 저하고는 예전에 일면식도 없으신 분이지만 웬지 모를 친근감이 들곤 합니다. 지금 이용사분의 연세가 아버지가 동갑인 걸 안뒤로 굉장히 살갑게 대하자 모든 관계가 그렇듯 이용사님도 저에게 너무 잘 해 주십니다. 명절전에는 뭐라도 저에게 주실려고 서랍을 뒤지시더니 귀면봉 한통을 허겁지겁 주시며 잘 사용하라고 말씀하셨고 명절 잘 보내라고 덕담도 해주셨습니다.
일전에 청량리 점에서 일하던 시절 정말 하지도 않은 저의 진료를 제가 한 것처럼 아주 오래 불평을 하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제가 잘못한 점이 있었다면 환불이나 배상을 하고 끝맺음을 했을텐데 제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집요하게 불만을 제기하셨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환자분의 연세가 당시 72세이셨는데 저희 아버지랑 연세도 같으신데 제가 아버지같은 분한테 그런 거짓말을 하겠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환자분이 곰곰히 들으시더니 그 이후로는 정말 그 상황에 대한 얘기는 한번도 하지 않으셨고 잘 협조해 주시고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추측이지만 그 당시 제가 느낀 점은 제가 그 얘기를 했을때 저를 당신의 아들의 시점에서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병원에서는 의사이지만 집에서는 누군가의 아들이듯이 제가 47년생 분들을 뵈면 남같지 않듯 그 어르신도 설령 지금도 그 진료가 제가 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본인의 자식들도 저와 비슷한 나이대이기에 자신의 아들에 대한 마음이 투영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렇게 저는 매달 중순 정도 되면 평상시보다 일찍 집을 나서서 병원 옆 사우나로 향합니다. 단지 돌아가신 아버지랑 동갑 연세라는 것 외에는 다른 특별한 점은 없지만 지금쯤 살아계셨으면 이 정도 나이가 드셨겠구나 혼자서 유추해보며 그렇게 머리를 깎고 염색을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보는 47년생 분들을 뵈면 웬지 반갑고 정감이 갑니다. 19471225 아버지의 양력생일인 이번호 그 숫자가 다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앞자리 네숫자인 1947이 일치하는 분을 뵐때면 웬지 모를 반가운 관계를 연결하는 저만의 비밀번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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