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나는 글

대기실

서리풀 김박사 2023. 11. 4. 13:31

 
 
 
아침 출근길 병원으로 들어서는 문이 열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창쪽 병원 대기실을 보면 저는 많은 생각이 듭니다. 곤색레쟈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은 색깔의 대기실 쇼파에 계신 환자분들을 뵈면 저도 모르게 약 칠십도 정도로 공손하게 인사드립니다.


그 분들은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저희 치과 내에서 사연을 가지고 계시기에 혹시라도 무성의한 대표원장의 모습이 행여 기분이 상하실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문을 들어설려고 합니다.
 
오늘 처음 오셔서 일종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신 환자분들

어제 수술한 상처로 인해서 심한 통증이나 후유증등으로 고개를 숙이고 계신 분들

전날 드시던 음식때문에 보철물이 빠졌거나 기능을 상실해서 화가 나신 분들

반대로 결과가 좋아서 정기적으로 확인하러 오신분들

정말 균일과는 정반대의 혼란스러운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그 곳이 바로 저희 병원 대기실입니다. 
 
가끔 그런생각을 합니다. 내가 태어난곳은 경상북도 북부의 작은 시골마을 어떤 운명이 날 이끌었기에 서울시 강북구 미아에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지 어떤 전생의 인연의 끊이 있었길래 여기 십여명의 직원들과 하루의 대부분을 동고동락 하고 있고 그리고 길거리에 쏟아지는 많은 치과 가운데 왜 이 많은 환자분들은 우리 병원으로 오셨는지 가끔 궁금합니다. 
 
아마도 흔히 듣던 인연이라는 말로 해석이 되겠지요. 인연은 불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그 단위를 겁이라는 단위로 표현합니다. 겁은 물방울이 떨어져서 집한채만한 바위를 없애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정말긴 시간입니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아마도 인간의 힘으로 가늠조차 안되는 긴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옷깃만 스치는 간단한 인연도 과거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렇게 대기실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분들과의 인연은 실로 대단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근인연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전생에 좋은 과보를 맺은 사람간의 만남을 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저와 대화하는 모든 환자분들이 정말 큰 전생에 오랜기간 좋았던 인연이였던 걸로 불교적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인연을 인위적으로 다시 만드는 것은 아마도 짧은 생애에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기일회란 말이 있는것 같습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단 한번의 기회가 있을뿐입니다.  정말 지금 맺어지는 이런 관계나 행동들은 다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경험할수 없는 최소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 하는 모든 행위가 어쩌면 너무나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반적인 인연을 넘어 자기 개인의 가장 조심스런 부위중의 하나이자 먹을 식 즉 목숨과도 같은 입안을 저에게 열어 보이는 저희 병원에서의 인연은 아마도 겁의 가장 높은  경지인 스승과 제자의 10000겁과 맞먹는 대단한 인연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소중하고 귀하디 귀한 인연들끼리 우주의 귀한 기운이 모이고 모여 처음 만나는 장소인 대기실
아마도 제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말로 설명할수 없는 인연의 가치의 무거움 때문이지 않나 곰곰히 생각합니다. 
 
 
 

저희 병원의 대기실 풍경입니다.